오랜만에 찾아간 ‘3천원 국숫집’… 놀라움의 연속

행주산성 근처에 소문난 국숫집이 있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라면 대부분 잘 아는 국숫집이다. 외진 곳에 위치한 허름한 식당이었던 시절, 그곳을 찾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자동차를 타고 행주산성까지 가서 굳이 국수를 먹는 사람이 몇이나 됐겠는가? 그러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 사이에 입소문이 퍼지면서 손님이 늘기 시작했다.

그 국숫집은 맛집으로 소문을 내도 손색이 없을 만큼 맛이 좋았다. 가격은 3천 원에 불과했다. 그뿐만 아니라 양이 무척 많았다. 냉면 그릇에 가득 담긴 국수를 바닥까지 비우는 게 쉽지 않았다. 거기에다가 “더 많이” 달라고 주문하면 그릇에 국물이 흘러넘치게 국수를 내왔다. 처음에 멋모르고 “더 많이”를 외쳤다가, 국수를 남기는 사람이 허다했다.

자전거를 타느라 많은 양의 에너지가 필요했던 사람들에게 이 국숫집은 일종의 ‘주유소’였다. 에너지를 보충하느라, 식당 앞에는 늘 자전거들이 길게 주차돼 있었다. 하도 소문이 나다 보니 어느 시점에 가서는 이 집 국수를 먹으러 자동차를 타고 오는 사람들까지 생겼다. 지금은 누가 누군지 모르게 늘 사람들로 북적이는 식당이 되었다.

평화누리 자전거길 3코스를 여행하는 길에, 참새가 방앗간 들르듯 국숫집 문을 열고 들어갔다. 마침 주유가 필요한 때였다. 날이 추운데도 여전히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데 몇 가지 변화가 눈에 띄었다. 식당 앞에 그 많던 자전거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다들 어디로 간 거야? 국수 값은 어느새 6천 원으로 올라 있었다. 순간 격세지감이 밀려왔다. 그새 세상이 이렇게 바뀌다니.

내막은 자세히 알 수 없지만, 그 사이 이곳에도 엄청난 변화가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건 이 길 위에서 일어난 변화 중에서도 극히 미미한 변화에 불과했다. 그 뒤에 평화누리 자전거길 3코스에서 보게 되는 변화는 결코 행주산성 아래 국숫집에서 일어난 변화에 비할 게 아니었다. 그곳에는 가히 ‘시대의 변화’라고 이름을 붙일 만한 놀라운 변화가 있었다. 오늘 내가 겪게 되는 일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어렵게 찾아낸 자전거길, 그런데 ‘그 길’이 아니다

평화누리 자전거길 3코스는 ‘고양길’이라는 별칭이 붙어 있다. 방화대교 북단에서 시작해 출판도시휴게소에서 끝나는 이 자전거길은 북쪽으로 자유로를 따라가며 오롯이 고양시를 지나가는 것으로 돼 있다. 자전거를 타고 고양길을 여행하는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때가 언제인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최소 10년은 더 지났을 것으로 기억한다.

한강 자전거도로가 행주대교 북단에서 끝나고, 그 위로 출판도시가 있는 파주까지 가려면 일반도로나 농로를 이용해야만 했다. 당연히 자전거가 다니기 좋은 ‘길’을 찾는 게 쉽지 않았다. 자유로에서 임진각 방향 오른편으로 차량이 많이 지나다니지 않는 한적한 도로가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그 길을 찾아서 진입하는 일이 꽤 까다로웠다. 행주대교 부근에서 헤매다 머리꼭지에 불이 붙을 지경이 되어서야 겨우 길을 찾을 수 있었다. 그러고도 자꾸 ‘길’에서 벗어나 꽤 애를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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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구아바, 애플망고… 열대식물 보러 온실 오세요

충남 홍성군농업기술센터 내 온실에 들어서면 온갖 열대식물이 반긴다. 외부와는 전혀 딴 세상처럼 느껴진다.

이곳 온실에는 열대·온대 식물 등 120여 종의 식물들이 다양한 색깔, 열매, 형태를 뽐내고 있다. 주말인 15일 홍성은 비가 내리고 있으며 강원도를 중심으로, 일부 지방에는 대설주의보까지 내려져 추위가 이어지고 있지만 이곳 온실은 평화롭다.

온실 ‘들빛’은 군민들을 위해 홍성군농업기술센터가 운영하는 곳이다. 유명 식물원 못지않은 시설로 주말은 물론, 평일에도 군민들이 찾는 곳이다.

기자가 찾은 15일 상당히 추워진 날씨에도 이곳 온실은 조용한 음악과 함께 평균기온 10도 이상을 유지하며 365일 무료로 개방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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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에 대해 모르는 게 없다 자부했지만, 이건 몰랐다

“바람이 분다. 바람이 불어 연평바다에 어허얼사 돈바람 분다.” 익히 알려진 ‘군밤타령’의 첫머리다. 군밤을 주제로 한 노랜데 시작은 뜬금없이 ‘연평도 바람’이다. 군밤과 그것이 무슨 상관이람. 전혀 관계가 없어 보이지만 연평의 바람이 ‘돈바람’이란 대목에서 작사자의 의도가 읽힌다.

누군진 몰라도 그는 연평도가 과거 부유했던 섬이었다는 역사적 사실에 주목한 듯싶다. 연평도에서는 강아지도 지폐를 물고 다닌 적도 있다고 한다. 그건 그저 허풍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연평도에 그런 호시절은 분명 있었다.

그 모든 신화는 조선시대 명장 임경업으로부터 시작한다. 당시 조선은 두 차례의 청나라 침공에 속수무책으로 당한 형편없는 약소국이었다. 특히 1636년 발발한 병자호란은 소현세자와 봉림대군 두 왕자까지 볼모로 끌려가는 등 역사상 가장 치욕적인 패배를 감내해야 했다. 당시 평안도 병마절도사 겸 안주목사였던 임경업은 두 왕자를 다시 구출해내려면 그때까지도 중원대륙을 차지하고 있던 명나라를 이용해야 한다는 생각에 이른다.

그를 위해 일단의 군사와 함께 명나라로 향하던 임경업 일행은 도중에 연평도에 잠시 정박한다. 식수와 양식을 구하기 위함이었다. 당시만 해도 연평도는 먹고 살기도 힘든 지경이었다. 이를 안타까워 한 임경업 장군은 필살기 비법 하나를 전수해준다. 이른바 ‘가시나무 걸치기’였다. 방법은 간단했다. 물이 빠진 갯벌에 1.5~2m 정도 되는 가시나무 가지를 촘촘히 꽂아 두기만 하면 된다. 단 가지 위가 뭍 쪽을 향하도록 비스듬하게 세워야 한다.

밀물에 밀려들어온 조기 떼가 썰물에 쓸려 내려가면서 가시 끝에 걸리는 원리다. 얕은 물을 좋아하며 떼를 지어 다니는 조기의 습성을 훤히 꿰뚠 혁신적인 방식이었다. 물살 세기로 유명한 안목해안에서 시도한 첫 실험은 대성공이었다.

수천 개의 나뭇가지 끝마다 은회색 조기들이 걸려 푸덕거리는 광경은 장관이었다. 이때부터 연평도는 조기의 산지로 전국에 이름을 떨치게 된다. 해마다 음력 4월이면 조기 파시(波市)가 섰고 많으면 어선만 1천여 척이 넘을 때도 흔했다.

조기의 추억은 역설적이게도 과학문명의 발달에 따라 서서히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 한도 끝도 없는 인간의 탐욕이 점차 조기의 씨를 말리고 바다 생태계까지 해친 거다. 일제가 들여온 안강망은 결정타였다. 1934년 6월 발생한 재해참사는 그에 대한 명백한 경고였다. 갑작스런 비바람을 피해 300여 척의 배가 연평항으로 귀항해 정박하였으나 세찬 바람과 파도가 항구를 덮쳤다. 그 날 사고로 323척의 배가 파괴되고 204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모든 죽은 이를 추모하는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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