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에 대해 모르는 게 없다 자부했지만, 이건 몰랐다

“바람이 분다. 바람이 불어 연평바다에 어허얼사 돈바람 분다.” 익히 알려진 ‘군밤타령’의 첫머리다. 군밤을 주제로 한 노랜데 시작은 뜬금없이 ‘연평도 바람’이다. 군밤과 그것이 무슨 상관이람. 전혀 관계가 없어 보이지만 연평의 바람이 ‘돈바람’이란 대목에서 작사자의 의도가 읽힌다.

누군진 몰라도 그는 연평도가 과거 부유했던 섬이었다는 역사적 사실에 주목한 듯싶다. 연평도에서는 강아지도 지폐를 물고 다닌 적도 있다고 한다. 그건 그저 허풍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연평도에 그런 호시절은 분명 있었다.

그 모든 신화는 조선시대 명장 임경업으로부터 시작한다. 당시 조선은 두 차례의 청나라 침공에 속수무책으로 당한 형편없는 약소국이었다. 특히 1636년 발발한 병자호란은 소현세자와 봉림대군 두 왕자까지 볼모로 끌려가는 등 역사상 가장 치욕적인 패배를 감내해야 했다. 당시 평안도 병마절도사 겸 안주목사였던 임경업은 두 왕자를 다시 구출해내려면 그때까지도 중원대륙을 차지하고 있던 명나라를 이용해야 한다는 생각에 이른다.

그를 위해 일단의 군사와 함께 명나라로 향하던 임경업 일행은 도중에 연평도에 잠시 정박한다. 식수와 양식을 구하기 위함이었다. 당시만 해도 연평도는 먹고 살기도 힘든 지경이었다. 이를 안타까워 한 임경업 장군은 필살기 비법 하나를 전수해준다. 이른바 ‘가시나무 걸치기’였다. 방법은 간단했다. 물이 빠진 갯벌에 1.5~2m 정도 되는 가시나무 가지를 촘촘히 꽂아 두기만 하면 된다. 단 가지 위가 뭍 쪽을 향하도록 비스듬하게 세워야 한다.

밀물에 밀려들어온 조기 떼가 썰물에 쓸려 내려가면서 가시 끝에 걸리는 원리다. 얕은 물을 좋아하며 떼를 지어 다니는 조기의 습성을 훤히 꿰뚠 혁신적인 방식이었다. 물살 세기로 유명한 안목해안에서 시도한 첫 실험은 대성공이었다.

수천 개의 나뭇가지 끝마다 은회색 조기들이 걸려 푸덕거리는 광경은 장관이었다. 이때부터 연평도는 조기의 산지로 전국에 이름을 떨치게 된다. 해마다 음력 4월이면 조기 파시(波市)가 섰고 많으면 어선만 1천여 척이 넘을 때도 흔했다.

조기의 추억은 역설적이게도 과학문명의 발달에 따라 서서히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 한도 끝도 없는 인간의 탐욕이 점차 조기의 씨를 말리고 바다 생태계까지 해친 거다. 일제가 들여온 안강망은 결정타였다. 1934년 6월 발생한 재해참사는 그에 대한 명백한 경고였다. 갑작스런 비바람을 피해 300여 척의 배가 연평항으로 귀항해 정박하였으나 세찬 바람과 파도가 항구를 덮쳤다. 그 날 사고로 323척의 배가 파괴되고 204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모든 죽은 이를 추모하는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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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이미지 원본 출처 : 오마이뉴스 RSS Feed
전문 보러 가기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894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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