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못 걷겠어” 주저앉았던 아들이 곧 환해진 이유

– 지난 기사 ‘낙타 무섭다더니 한국에 데려가자는 아들'(링크)에서 이어집니다.

마라케시와 함께 모로코를 여행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도시 페스(Fez)로 향했다. 페스는 12세기 전 아랍국가 이드리스 왕조의 수도였고, 현재는 110만 명이 살고 있는 모로코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첫 번째는 카사블랑카, 약 330만 명)이다.

9천 개의 골목이 있다는 페스의 구시가지인 메디나(Medina)는 모로코 문화재 중 가장 먼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1981년)되었다. 비좁은 흙담으로 이어진 메디나 속 골목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좁았던 길은 다시 넓어졌다 좁아지길 반복하며 미로처럼 얽혀있었다.

이 중에서도 관광객들에게 가장 유명한 곳은 ‘태너리(Tannerie)’라 불리는 천연 가죽 염색 공장이다. 이곳에서 가죽 장인이 수많은 우물 속에 색색의 천연염료를 넣고 직접 가죽을 넣었다 꺼냈다 반복하며 수작업으로 가죽을 무두질(tanning)하는 장면을 볼 수 있다.

모로코는 온통 푸른색으로 칠해진 아름다운 도시 ‘쉐프샤오엔(Chefchaouen)’과 지브롤터 해협 건너 유럽대륙을 볼 수 있는 도시 ‘탕헤르(Tangier)’ 등 독특한 곳이 많았지만, 나는 사하라와 함께 이 가죽 공장을 꼭 보고 싶었다.

하지만, 페스의 메디나는 골목길이 미로처럼 얽혀있고, 수많은 골목과 성곽으로 인해 지도 내비게이션도 잘 안되는 지역이 많을 것 같았다. 그래서 차라리 현지인에게 비용을 주고 안내를 부탁하기로 했다.

페스 메디나를 들어가는 관문인 ‘블루 게이트(Bab Boujloud)’에 도착하니 입구 주변에서 가이드를 쉽게 구할 수 있었다. ‘무함마드’란 이름의 젊은 청년을 따라 메디나로 들어갔다. 무함마드는 우리에게 현지인들만 아는 골목을 안내해 줬다.

메디나 골목은 자동차가 지나갈 정도로 넓은 길부터 어른 한 명이 겨우 지나갈 만큼 좁은 길이 뒤섞여 있었고, 정말 현지인의 도움이 아니면 쉽게 길을 잃어버릴 것 같았다. 무함마드의 말을 들어보니 이곳은 좁은 길과 넓은 길이 뒤섞여 있어 큰 수레가 다니지 못한다고 했다. 정말 골목길을 거닐다 보니 수레같은 이동수단은 보이지 않고 짐을 실은 당나귀가 자주 보였다.

이곳은 과거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막기 위해 주변을 빙 둘러 흙벽돌로 10m 정도의 높은 성곽을 쌓았는데 그 둘레가 16km에 달한다. 외부는 성곽으로 보호하고 내부에는 미로 같은 좁은 길을 만들어 이중으로 외부의 침입을 막았다고 한다.

걷는 골목골목마다 이색적인 풍경에 사진 찍고 싶은 욕구가 솟구쳤지만, 어린 아들이 지칠까봐 내색하지 못하고 서둘러 걸었다.

사실 메디나 여행을 계획하며 조금 걱정이 되었었다. 그동안 다른 도시에서는 늘 유명 관광지 바로 옆에 주차하고 아들은 조금만 걷게끔 동선을 계획했었지만, 이곳은 차량으로는 도저히 이동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직선구간은 2km 정도밖에 되지 않았지만, 미로처럼 복잡하게 얽힌 골목길 특성상 빙빙 돌아가다 보면 최소 1~2시간은 걸어야 할 것만 같았다. 그래서 아들의 눈치를 살피며 일부러 계속 말을 걸었다.

“태풍아, 여기에 골목길이 9천 개가 넘는대~”
“정말? 누가 다 세어본 거야?”
“어…. 그래. 여긴 우체부 아저씨가 집을 어떻게 기억할까? 똑똑해야 하겠다. 안 그래?”

전체 내용보기


중략

기사/이미지 원본 출처 : 오마이뉴스 RSS Feed
전문 보러 가기 :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005111

문무대왕릉 북쪽으로 7.7km… 용이 지켜주는 마을

삼국유사에도 나오는 용은 대체로 국가나 종교와 관련이 깊다. 왕이 곧 국가이고, 호국 종교도 국가 운명과 함께 할 수밖에 없다. 우리 역사 및 영토와 관련이 깊은 만주족 마지막 황제 푸이의 유모도 용에게 젖을 먹이는 꿈을 꾸고 나서 유모가 되었다. 용의 흥망은 왕조 흥망성쇠와 상징적으로 연결되고, 왕이 한 명이듯이 용도 한 마리여야 한다.

나라를 지키는 문무대왕의 용 얘기와 용이 죽고 망한 백제는 나라의 흥망성쇠를 상징하는 대조적인 얘기다. 문무왕은 자신이 용이 되어 침입해 들어오는 왜구를 막겠다며, 유골을 동해에 묻어 달라고 유언했다. 나라가 흥하기를 바라면서 용 이야기가 만들어졌다. 문무왕 아들 신문왕은 아버지를 기리기 위해 감은사에 용이 드나들 수 있도록 하였고 만파식적 전설까지도 더해진다.

소정방은 금강에서 백제를 지키는 용을 낚시로 낚아 올렸다. 낚시에 걸린 용은 하늘 높이 솟아올랐다가 현재의 공주시 우성면 동대리에 떨어졌다. 죽은 용이 썩은 냄새가 온 마을에 진동하여, 마을 이름을 ‘구린내’ 또는 ‘구리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망국의 한을 새기면서 용이 죽은 이야기가 만들어졌을 것이다.

용은 치열한 경쟁을 뚫고, 귀하디 귀한 여의주를 물고 승천해야 한다. 고흥 영남 용바위 전설에는 두 마리 용이 여의주를 얻으려고 싸움을 벌였다. 마을 주민 류시인이 한 마리를 활로 쐈고, 이긴 용이 용암마을 앞 바위를 디딘 채 승천했다. 태안 용난굴 용도 한 마리는 승천하고 한 마리는 망부석이 되었다. 이처럼 백성들이 생각하는 용은 여의주 싸움에서 이긴 한 마리이다.

문무대왕릉 북쪽으로 7.7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감포읍 전촌 해안에 단용굴과 사용굴이 바로 옆에 있다. 단용굴에는 나라를 지키는 용처럼, 마을을 지키는 용이 한 마리 살았다. 바로 옆에 있는 사용굴은 한 동굴에 네 마리 용이 살았다. 동서남북 사방을 지키는 네 마리는 한 마을보다 넓은 지역을 가리킨다. 백성들은 한 마리보다는 네 마리가 더 힘이 있게 큰 지역을 지켜주리라 생각한 것이다. 여기는 나라를 지키는 만파식적 전설이 깃든 나정마을도 있다.
전체 내용보기


중략

기사/이미지 원본 출처 : 오마이뉴스 RSS Feed
전문 보러 가기 :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005952

미국 흑인 역사의 달 2월에 찾아간 ‘노예들의 탈주로’

맨해튼 동쪽 섬 롱아일랜드의 제리코는 가족 단위의 농장이 개간되면서 시작된 마을이다. 1800년대, 동서를 가로지르는 세 개의 큰 도로와 남북을 잇는 두 개의 대로가 교차하며 유동 인구도 늘어났다. 이 정도 도로망이면 충분하다고 여겼던 주민들에게 기차 노선도 마을로 끌어와야 한다고 설득하는 이가 있었다. 마을의 우체국장, 발렌타인 힉스였다.

지역민에게 신망이 두터웠던 그는 불모지나 다름없던 제리코 남쪽 평원을 사들여 토지 조합과 새로운 공동체를 일구었다. 3년 만에 롱아일랜드 철도(LIRR)를 개척지에 끌어들이는 데 성공하고, 기차역과 물류 부지로 개척지를 탈바꿈 시켰다(1837년).

힉스의 선견지명으로 제리코와 주변 지역의 경제가 크게 발전하자, 주민들은 기차역 주변 새로운 마을을 ‘힉스빌(Hicksville)’로 불렀다. 지금까지도 힉스빌과 힉스빌 기차역은 중요한 교통 요충지이자 지역 상권의 중심이며 제리코는 미국내 최상위 교육구 중 한 곳이다.

그런데 발렌타인 힉스에게는 사적으로 운영 중인 기차역이 하나 따로 있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은밀한 기차역. 특별한 사람들만 이용 가능한 철로 없는 기차 노선. ‘지하철도'(Underground Railroad)라 불리던 탈출한 흑인 노예들의 비밀 도주로. 그들을 숨겨주던 장소인 ‘정거장’ 중 하나가 바로 발렌타인 힉스의 집이었다.

흑인 노예들의 탈주로, 지하철도와 정거장

흑인 한 사람이 숲을 헤치고 죽을 힘을 다해 달아나고 있었다. 저 멀리 노예 사냥꾼으로 보이는 사내가 추격 중이었다. 갑자기 큰 너와나무 집 문이 열리더니 집주인이 흑인 노예에게 얼른 안으로 들어오라 했다.

앞서 달리던 노예가 눈앞에서 사라지자 노예 사냥꾼은 틀림없이 집안으로 숨어 들어갔을 거라고 짐작하고 문을 두드렸다. 주인을 밀치고 들어가 온 집안을 샅샅이 뒤졌지만 흑인 노예를 찾을 수가 없었다. 가구 뒤에 숨겨진 비밀 계단을 통해 이미 그 집의 다락방으로 숨겨졌기 때문이었다.

남부 노예주(Slaves States)에서 캐나다까지 비밀 지하철도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한 노선과 역들을 가지고 있었다. 너와집 주인이자 제리코의 지하철도 역장인 발렌타인 힉스도 그 중 하나였다. 힉스는 숨겨주었던 노예가 ‘롱아일랜드 사운드’라 불리는 섬의 북쪽 바다를 무사히 건널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고 전해진다.

지금은 스테이크 하우스로 바뀐 발렌타인 힉스의 집 앞에 섰다.

“이런 역사적인 집은 저 멀리 떨어진 곳 어디에서 역사 부지로 잘 보존되어 있을 줄 알았어요.”

그러게나 말이다. 교회를 가고, 대형 한국 마켓에 장보러 가고, 맨해튼에 가기 위해 기차를 타러 다니던 길, 동서남북을 잇는 두 개의 고속도로와 세 개의 대로가 교차하는 작은 틈새에 낀 역사 부지라니. 딸아이의 말에 나도 마음이 복잡해 졌다.역사를 좋아하는 딸은 나의 좋은 길동무이다. 길도 잘 찾고, 표지판도 잘 찾고, 운전하는 내 대신 사진도 곧잘 찍는다.

미국의 2월은 ‘흑인 역사의 달’이다. 우리가 늘 다니던 길목에도 ‘지하철도’로 사용되었던 집이 있으니 한번 찾아가보자는 내 제안에 조금 들떴던 모양인데, 손바닥만 한 작은 땅조차 온전히 보존되지 못하고 모텔(Inn)과 주유소, 현대식 빌딩이 땅을 잘라먹고 들어앉아 있으니 딸아이가 조금 실망한 듯했다.

발렌타인 힉스 일가가 살던 때의 제리코도 전통과 변화가 공존했다. 큰 길들의 교차점에 자리했던 장인의 집도 오래 전부터 여행객을 맞아 들이곤 했다. 장인은 나그네에게 돈을 받지 않고 그저 재워주고 먹여주었다고 한다. 따뜻하게 대접받은 이들은 감사의 마음을 담아 얼마간의 돈이라도 집안 구석에 슬며시 놓고 갔고, 장인은 이런 돈을 따로 모아 여러 곳에 신앙 공동체의 집(Meeting House)을 지어나갔다.

발렌타인 힉스의 친척 어르신이자 그의 장인, 퀘이커 공동체의 유명한 지도자 ‘엘리아스 힉스’ 이야기다. 장인과 사위는 여러모로 한마음 한뜻이었다. 엘리아스 힉스의 집과 일가가 운영하던 밀러리지인(The Millerridge Inn), 사위인 발렌타인 힉스의 집이자 가족이 운영했던 메인 메이드 인(Maine Made Inn), 그들과 함께 노예제 폐지의 신념을 가졌던 제리코 퀘이커 공동체는 위험을 무릅쓰고 탈출 노예를 돕고, 노예 해방과 자립을 물심양면으로 돕는 롱아일랜드의 중요한 지하철도 마을이었다.


중략

기사/이미지 원본 출처 : 오마이뉴스 RSS Feed
전문 보러 가기 :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005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