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남결’ 박민영, ♥나인우와 손잡고 애틋…이이경에 파혼 선언

(엑스포츠뉴스 이이진 기자) ‘내 남편과 결혼해줘’ 박민영이 이이경과 파혼했다. 29일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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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칸센을 타고도 6시간 반, 가고시마

나가사키현 시마바라에서 배를 탔습니다. 한 시간여의 항해 끝에 구마모토에 도착합니다. 여기서 더 아래로 가면 규슈의 남쪽 끝, 가고시마입니다.

삿포로에서 시작한 여행은 두 달 가까이 남쪽으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가고시마에 도착했습니다. 가고시마는 그만큼 먼 땅이었습니다. 도쿄와 가고시마는 신칸센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최대 시속 260km의 신칸센을 타고도 6시간 반을 달려야 도쿄에서 가고시마에 닿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가고시마의 지리적 위치는 특별합니다. 서쪽 끝의 섬 규슈에서도 가장 먼 땅이니까요. 도쿄나 교토와 멀면서도, 규슈 지역에 위치해 외부 문명과 교류할 수 있는 땅이었죠.

특히 가고시마는 오랜 기간 오키나와와 관계를 맺어 왔습니다. 때로는 교역이었고, 많은 기간 식민 지배였습니다. 오키나와에서 생산되는 설탕을 비롯한 특산품을 독점할 수 있었죠.

가고시마의 옛 이름은 사쓰마(薩摩)였습니다. 사쓰마는 시모노세키, 즉 조슈(長州)와 함께 메이지 유신의 선봉에 선 지역이었죠. 사실 막부 말기, 사쓰마와 조슈의 입장은 너무도 달랐습니다.

둘 모두 막부의 핵심 권력과는 멀었습니다. 그러나 그 상황에 대응하는 방식이 달랐죠. 조슈는 처음부터 막부를 적대했습니다. 반면 사쓰마는 어떻게든 막부 권력에 진입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어느 정도 성과도 있었습니다. 에도 막부의 13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사다의 정실부인은 사쓰마 영주 가문의 딸이었습니다. 막부의 외척 세력이 되는 데 성공한 것이죠.

하지만 막부는 사쓰마를 끝내 배척했습니다. 사쓰마의 영주는 막부 정치에 참여하지 못했죠. 결국 사쓰마는 조슈의 손을 잡고 막부 타도에 나서게 됩니다. 그렇게 막부는 물러났고, 1868년 메이지 정부가 세워졌죠.

하지만 메이지 유신이 여기서 끝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새로운 정부가 세워졌고, 개혁과 변화를 이끌 책임이 메이지 정부에 주어졌습니다. 초기 메이지 정부는 소위 ‘유신 3걸’이 이끌었습니다. 오쿠보 도시미치, 기도 다카요시, 그리고 사이고 다카모리가 그들입니다.

메이지 정부는 일본의 여러 세력이 예상한 것보다 훨씬 급진적이고 빠른 변화를 이끌었습니다. 정부 수립 10년 만에 막대한 수준의 개혁이 이루어졌죠. 엄격하고 세밀하게 구성되어 있던 신분제는 사라졌습니다. 이제는 평민과 사족, 화족이라는 단순한 구분만 남았죠.

무사의 특권도 사라졌습니다. 메이지 정부는 무사들이 칼을 차고 다닐 수 없게 했습니다. 과거 일본에서 군인은 특권 계층이었지만, 곧 모든 국민이 군인이 될 수 있게 바뀌었습니다.

1871년에는 옛 영주들이 가지고 있던 영토를 모두 몰수했습니다. 영주들은 전부 자기 지역을 떠나 도쿄로 올라오라고 명령했죠. 메이지 정부는 영주들을 몰아내고 지방을 직할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조치에 순순히 응한 이들도 있었습니다. 당시 일본 사회에는 어떤 식으로든 빠른 변화가 필요하다는 분명한 의견 일치가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반발하는 사람들도 당연히 있었습니다. 옛 사무라이 가운데에는 메이지 정부에 반란을 일으킨 이들도 있었죠.

그리고 이 틈을 탄 사람이 있었습니다. 유신 3걸의 한 명인 사이고 다카모리였습니다. 사이고 다카모리는 사쓰마 출신입니다. 언급했듯 사쓰마는 처음에는 막부 타도에 적극적이지 않았습니다. 원래부터 급진적인 개혁을 바란 세력은 아니라고 할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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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가 마중 나오는 태국 카오야이 국립공원

겨울의 태국은 내 기억 한켠에 남아 있던 모습과는 조금 달랐다. 나무마다 잎은 조금 말라 있었고 공기가 품고 있던 습함과 특유의 냄새는 없었다. 그러하기에 카오야이(Khao Yai) 국립 공원을 거닐었을 때, 땡볕에 흠뻑 젖는 대신에 선선한 가을 기분을 느낄 수 있어 너무 좋았다.

카오야이 공원은 1962년에 개장한 태국 최초의 국립공원이며 2005년에는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크기는 평방 2167km다. 그야말로 광활하다. 그 안에는 식물 3천여 종, 포유류 60여 종이 살고 있다고 한다(위키디피아). 방콕에서 차로 3시간 가량 이동해야 도착할 수 있다.

공원 입구에는 군복을 입은 남자가 매표를 하고 있었다. 영어와 현지어로 쓰인 가격표가 있는데, 외국인의 가격에는 ‘0’이 하나 더 붙는다. 차별이라고 느낄 수 있겠지만 그 가격이 한 사람 당 한국 돈으로 1만5천 원 정도라 크게 불만이 생기지는 않았다. 매표소로부터 20여 분 들어가니 국립공원 센터가 나왔다.

주차 구역에는 원숭이들이 빨간 엉덩이를 내밀며 무심하게 들어오는 차를 바라보았다. 원숭이들은 사람이 가까이 가도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 익숙한 듯 그저 훌쩍 나무에 오르거나 차 지붕을 놀이터 삼아 논다. 안내판에 원숭이의 공격을 조심하라는 문구에 스스로 거리를 두며 그 모습을 지켜보는 재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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