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년생 정동분 19 : 포장마차 지키는 25살 여인과 3살 아이

갈색 롱코트의 중년 남성

칼바람 부는 어느 추운 겨울. 골목길 모퉁이에 자그마한 포장마차가 보인다. 안에서 뭘 그리 팔팔 끓이는지, 허연 김이 천막 사이로 모락모락 새어 나온다. 주황색 전구 불빛 아래, 실루엣이 얼핏 보인다. 시장기를 이기지 못하고 포장마차 안으로 들어간다. 20대 중반이나 겨우 됐을까, 젊디젊은 주인장이 쭈뼛쭈뼛 인사를 건넨다.

“뭐……. 드릴까요?”

안줏거리를 훑어보니 소 천엽과 간, 꼼장어와 오뎅이 있다. 허연 김 올라오는 오뎅 국물 한 사발이면 뱃속 냉기가 좀 가시겠다.

“오뎅 한 그릇이랑 소주 한 병만 주슈.”

주문을 마치자, 주인장은 미리 썰어둔 오이와 당근 몇 개를 접시에 담는다. 손끝을 따라가다 시선이 멈춘다. 작은 머리통 하나가 보인다. 서너 살밖에 안 돼 보이는 남자아이가 앉아있다. 졸음이 몰려오는지, 주인장 바짓가랑이 붙들고 꾸벅꾸벅 존다. 시계를 보니 밤 9시가 넘었다. 여느 집 아이 같았으면 벌써 꿈나라로 갔을 시간이다. 그렇지, 졸릴 만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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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인가 보쥬?”

“아~ 예……. 아빠랑 집에 있으라고 해도, 기어코 따라 나와서 이렇게 귀찮게 하네요…….”

남편이란 작자는 뭐하고……. 알 길 없는 사연, 저마다 팔자려니 하고 만다. 소주 한 병에 오뎅 한 그릇을 후딱 비운다. 손끝이 야무지더니, 국물이 깊다.

“들어가실 때 애기 과자라도 한 봉지 사 가슈. 거스름돈은 됐수다.”

5천 원짜리 한 장 건넸더니, 펄쩍 뛰며 잔돈을 주려 한다. 서둘러, 뒤돌아 나왔다.

“자~알 먹고 갑니다.”

컷.

1985년 2월이었다. 당시 동분은 25살이었고, 큰아들 주성은 3살이었다. 자신을 고등학교 선생이라고 소개한 중년 남성은 동분에게 5,000원을 쥐여 줬다. 동분은 지금도 그때 기억이 생생하다.

“니가 한 번 생각해 봐라. 새파랗게 젊은 새댁이 3살짜리 애기 옆에 앉아놓고 포장마차에서 쏘주를 팔고 있으니, 그 꼴이 얼마나 기막힐 노릇이었겄냐. 짠하고 불쌍했겄지. 그러니까 거금 5,000원이나 줬겄지. 내가 괜찮다고 잔돈 주려니까, 자기가 고등학교 선생인데 애기가 예뻐서 주는 거라고 하고는 서둘러 나가더라고. 그래가지고 못 이기는 척 받은 겨. 그게 참 두고두고 고맙더라고. 그래서 그 아저씨를 못 잊는 겨. 짙은 갈색 롱코트에 회사원들 들고 다니는 검은색 가죽 가방 들고 있었고, 금색 테 두른 안경을 쓰고 있었는데 인상이 참 선하게 생겼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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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주성의 유치원 소풍

포장마차시절의 동분과 큰아들 주성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 축산품질평가원, 한국소비자원 자료를 종합하면 1985년 소주 1병에 약 338원, 국내산 삼겹살 한 근(600g)에 약 3,578원이었다. 당시 5,000원이면 소주 15병이나 삼겹살 한 근 반을 살 수 있는 돈이었다. 참고로 2023년 현재 소주는 1병에 평균 1,665원, 삼겹살은 한 근에 평균 1만 4,904원이다.

얘기했던 것처럼, 시집살이 당시 동분은 ‘분가’하는 것으로 시어머니에게 저항했다. 1984년 12월, 서당(=시댁)에 살던 동분 가족이 대전 대흥동으로 다시 이사 나온 건 말하자면 두 번째 투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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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니네 아빠가 신탄진에서 택시 굴렸는데, 대전으로 이사 나온 김에 대전에 있는 택시회사 취직한다고 그만둔 거여. 근데 또 막상 곧바로 취직이 안 되더라고. 그러는 바람에 니네 아빠가 졸지에 백수가 돼가지고는 한 서너 달 쉬었지. 니네 형이 그때 3살이라 유치원 다녔는데 유치원비랑 월세는 둘째 치고, 당장 세 식구 밥 빌어먹을 판이 된 겨.”

일숫돈 50만 원


중략

기사/이미지 원본 출처 : 딴지일보 RSS Fe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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