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곡창고에 양곡은 없고, 웬 책과 그림만 잔뜩

다 쓰러져가는 양조장 건물이 젊은 연인들이 즐겨찾는 카페로 변하고, 한때 약품창고로 쓰이던 건물이 젊은 작가들을 위한 예술 작품 전시 공간으로 뒤바뀌는 세상을 살고 있다. 재미있는 세상이다. 예전 같으면 일찌감치 허물고, 그 자리에 요즘 세상에 맞는 번듯하고 깔끔한 형태의 새 건물들을 지어 올렸을 것이다.

그런데 낡고 오래된 건물이라고 모두 다 허물고 새로 짓는 게 능사가 아니었다. 세상은 돌고 돈다. 사람들이 그 건물들에서 어딘가 예스러운 분위기를 발견했다. 한편으로는 그 생경한 분위기가 색다른 멋으로 다가온다는 걸 감지했다. 고졸하다는 말을 이럴 때도 쓸 수 있을 것 같다. 기교를 모르는 소박함이 사람들로 하여금 마음이 푸근해지는 정취를 느끼게 해준다.

여하튼 그곳에 요즘 건물들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투박하고 거친 매력이 있는 건 분명해 보인다. 거기에 세월이 녹아든 편안함도 있다. 그같은 정경들로 해서, 누군가는 그곳에서 오래된 추억을 떠올리기도 하고, 누군가는 또 새로운 추억을 만드는 시간을 갖기도 한다. 철거 직전의 옛날 건물들이 이처럼 요즘 사람들의 사랑을 받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삼례(전북 완주군)의 ‘양곡창고’들도 그런 건물 중에 하나다. 전국에, 양곡창고를 카페나 전시 공간 등으로 개조해서 사용하는 곳이 꽤 있다. 전주나 군산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여기에 전주와 군산에서 가까운 삼례를 빼놓을 수 없다. 그렇다고 삼례를 전주나 군산과 동일시할 수 없다. 삼례는 좀 더 특별한 사례에 속한다. 전주나 군산보다 한 발 더 진일보한 모습이다.

양곡창고의 시대를 초월한 쓰임새

삼례는 일제강점기 뼈아픈 역사를 간직한 곳이다. 일제가 자행한 양곡 수탈의 중심지였다. 이곳의 양곡창고들은 일본인들이 만경평야에서 수확한 쌀을 수탈해 일본으로 반출할 목적으로 만들었다. 일본은 이곳에 대량의 쌀을 보관했다가 그 쌀을 삼례역에서 철도를 이용해 운반해 갔다. 이 창고들이 ‘일제강점기 쌀 수탈의 역사’를 증언하는 살아 있는 증거물들이다.

비옥한 곡창지대였던 까닭에, 삼례에는 많은 수의 양곡창고가 지어졌다. 일제강점기를 지나 해방이 된 후에도 상당히 오랜 기간 쓸모를 유지했다. 일제가 물러간 뒤에는 2010년까지 농협 창고로 사용됐다. 일제시대를 포함해 그때까지 양곡을 저장하는 창고로 쓰인 세월이 무려 90년이다. 그사이 얼마나 거친 시간을 보냈을지 감히 짐작도 가지 않는다.

그런데도 그 창고들이 지금 문짝까지 그대로 달려 있다. 수없이 보개수를 거친 결과일 것이다. 그래도 세월을 완전히 감출 순 없다.2010년 이후로는 그저 쓸모를 다한 창고에 불과했다. 그냥 두면 저절로 없어질 건물들이었다. 그런데 그 무렵 뜻밖의 상황이 전개된다. 2013년 지자체에서 이곳 양곡창고들을 되살려 복합 문화예술 공간인 삼례문화예술촌을 조성하기로 하면서, 새로운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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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이미지 원본 출처 : 오마이뉴스 RSS Feed
전문 보러 가기 :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987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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