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경고… ‘건강한 여성의 몸’은 대체 어디 있나

한 출판사의 대표와 만나기로 한 날이었다. 비록 얼굴은 모르지만 카페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그가 누구인지 대번에 알 수 있었다. 나를 뚫어져라 봤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다가와서 말을 걸거나 하지 않아서, 핸드폰 메시지가 몇 번 오간 다음에야 인사를 나눴다.

그는 내가 출연한 영상과 인터뷰를 찾아보고도 나를 알아보지 못한 이유를 설명하고 싶어 했다. ‘오해하지 말고 들으라’고 하면서 운을 떼는데 듣지 않아도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 것 같았다. 말인즉 사진과 영상으로 볼 때는 지금보다 몸집이 훨씬 컸다는 거다. 출간을 제안받고 나간 자리인데 처음 받은 질문이 체중 감량의 비결이었다.

과장하면 그 무렵에 거의 매일 듣는 질문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자주 들르던 육개장집 사장님이, 몇 년간 말 건 적이 없는 옆집 사람이, 시장에서 양배추를 팔던 상인이 저마다 체중에 관해 물었다. 그렇다고 해서 딱히 불쾌하진 않았다. 누군가가 갑자기 10kg도 더 감량한 채 나타나면 나부터도 무슨 변화가 있었나 궁금할 테니까.

체중 변화는 내 삶의 모든 이슈를 집어삼켰다. 내가 쓴 글이 체중의 반만큼만이라도 관심받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정말이지 현대사회의 가장 주된 관심사가 ‘어떻게 생겼느냐’인 것은 부정할 수 없는 팩트다. 그러니까 원래부터 저체중이 아니면서 성별마저 여성인 내가 감량 이후에 겪은 일은 너무나 전형적이다.

‘음식중독’이라는 깨달음, 그리고 변화

그러나 전형성을 살짝 빗나간 요소도 있다. 내가 페미니스트이고 다름 아닌 운동을 주제로 글을 쓴다는 사실이었다. 애초에 감량을 시작한 것도 주짓수 대회를 소재로 글을 쓰기 위해서였다. 그전까지 몸무게는 내 관심사가 아니었다.

오히려 나는 모든 여성이 강박적으로 집착하는 몸무게에서 자유롭고 마구 날뛰는 식욕의 고삐를 과감하게 풀어버린 여성으로서 자부심마저 느꼈다. 그리고 내 평생 지금 가장 건강하다고 굳게 믿었다. 절대 굶주리지 않고 그깟 숫자에 연연하지 않는 나! 10년 전쯤에 저체중이던 몸이, ‘몸매가…’로 시작하던 여성혐오적인 언사 따위가 조금도 그립지 않았다.

그런데 체중을 줄이느라 식사량을 절제하고 채소 위주로 먹으면서 내가 가벼운 음식중독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동안 나는 스트레스에 따른 가장 쉽고 편한 보상으로 자극적인 맛을 원했다. 그러나 흡사 마약중독처럼 기대했던 보상이 쉽게 주어지지 않았다. 무엇을 먹어도 만족하지 못해서 식당, 와인샵, 카페, 편의점을 끝없이 순회했다. 갈수록 체중이 늘어나는 이유를 나이라고 합리화했으나 진짜 원인은 음식중독이었다.

힘이 세고 적당히 살찐 채로 먹고 싶은 걸 마음껏 먹던 내가 음식중독이라니! 배신감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충격의 반작용으로 이번에 건강식에 매달렸다. 샐러드 식사는 몸뿐만 아니라 정신까지 정화하는 것 같았다. 또 전체 식사량에서 채소 비중을 높이기 위해서 아마추어 과학자처럼 이런저런 생체 실험에 몰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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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이미지 원본 출처 : 오마이뉴스 RSS Feed
전문 보러 가기 :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975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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