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에 흠뻑 빠진 하루, 기형도 문학관에 다녀오다

지난달 28일 ‘기형도 문학기행’ 가기 며칠 전, 쌀쌀한 날씨가 한몫했다. 내가 일하고 있는 물류센터엔 짙은 안개가 깔렸고 비도 내렸다. 그 덕분에 나는 큼지막한 플라타너스 잎이 떨어져 거리를 덮은 가을 단풍 길을 올해 처음 걸을 수 있었다. 기형도의 시 ‘안개’가 떠올랐다.

날이 어두워지면 안개는 샛강 위에
한 겹씩 그의 빠른 옷을 벗어놓는다. 순식간에 공기는
희고 딱딱한 액체로 가득찬다. 그 속으로
식물들, 공장들이 빨려 들어가고
서너 걸음 앞선 한 사내의 반쪽이 안개에 잘린다.
(‘안개’ 중에서)

책장 구석에 꽂혀있던 <입 속의 검은 잎>

KTX를 타고 지하로만 지나갔던 광명(철산역)을 처음 방문했다. 서울 서쪽 끝에 사는데도 생각보다 가까웠다. 7호선 지하철 안에서 기형도 시인의 유일한 시집 <입 속의 검은 잎>의 김현 평론가 해설을 읽었다. 내 책장에 오랫동안 꽂혀 있었던 1989년 초판본이다. 문득 과거 구입해 읽었던 기억이 아지랑이처럼 피어났다.

그때 나는 김현 평론가가 해설에 사용한 ‘그로테스크’라는 단어에 움찔움찔 호기심이 생겼었다. 시를 읽어 보면 ‘괴이하다’라는 뜻의 이 단어를 사용하는 게 적확해 보였다. 우울, 죽음, 절망 등이 가득한 시들이기 때문이다.

이 책의 해설 본문은 원래부터 시인이 생전에 시집 발간을 준비하고 있을 때 김현 평론가가 일부 써놓은 것이리라 추측한다. 그리고 중간에 기형도 시인이 급작스럽게 사망하자, 이를 탄식하는 내용이 해설 맨 앞쪽과 맨 뒤쪽에 급작스레 덧붙여졌을 것이고.

김현 평론가는 기형도의 시가 ‘그로테스크’하다고는 봤어도 시인의 죽음을 믿을 수가 없었나 보다. 해설에 그와 관련해 “이건 거짓이거나 환각이라는 게 내 첫 반응이었다”라고 나와 있었으니 말이다.

기형도 기행 일정을 가기 전 내가 놀란 점은 ‘기형도문학관’이 존재한다는 사실이었다. 많은 시를 쓴 것도 아니며 젊은 나이에 요절했고, 그 시도 도저한 괴이함이 가득한데 문학관이라니, 놀라웠다.

나중에 알고 보니 문학관은 비교적 최근인 2017년에 개관했고, 그동안 지인과 후배들, 많은 문학가들이 물밑 작업을 해왔던 것이다. 광명시도 나름의 목적을 가지고 노력을 기했을 것이다. 그렇게 상자에 넣어져 내다 버려질 뻔한 유품들이 살아남아 전시되고 있었다. 유품을 대신해, 시를 형상화해 설치 미술 작품이나 조형물로 조성한 공간 또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생전에 남다른 필력과 사상, 인품을 갖추고 치열하게 살았으며, 우리나라 시문학사에 유일무이한 시를 남긴 것이 문학관 설립의 주된 이유가 되었을 것이다.

기형도문학관은 지역문화의 중추적인 장소 역할도 담당하고 있다. 우리가 갔을 땐 문학관 마당에서 풍물패들의 흥겨운 연주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3층 강당은 이런저런 모임에 대관을 해주고 있었다. 더욱이 우리가 걸은 ‘기형도 시 길’은 문학 산책로의 면모를 잘 갖추고 있었다. 여기에 시인의 친누나이자 명예 관장인 기향도 님의 설명을 듣고, 전시장을 들러보고서 의문점이 해소되었다.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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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이미지 원본 출처 : 오마이뉴스 RSS Feed
전문 보러 가기 :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975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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