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서 캄보디아로… 이렇게 쉬운 국경은 난생 처음

저는 호치민 시를 떠나 국경을 넘어 캄보디아의 프놈펜으로 들어왔습니다. 버스를 타고 국경을 넘는 과정은 아주 쉬웠습니다. 버스 승무원이 거의 대부분의 출입국 사무를 대행해 주더군요. 심지어 캄보디아는 비자가 필요한 나라인데도, 비자 비용만 지불하고 저는 캄보디아 측 입국심사관을 만날 일조차 없었습니다.

육로국경을 넘은 경험히 없는 것은 아닌데, 그래도 이렇게 쉬운 국경은 처음이라 약간은 당황스럽습니다. 아무튼 덕분에 베트남에서 출국해 캄보디아에 입국하는 데는 20분도 채 걸리지 않았습니다. 호치민 시에서 프놈펜까지는 230km 남짓, 이 거리를 6~7시간 정도 달려 프놈펜에 무사히 도착합니다.

‘우정 기념탑’ 앞에서 생각한 어떤 우정

생애 가장 쉬운 국경 넘기를 경험하면서, 버스 안에서 캄보디아와 베트남 사이의 관계에 대한 생각을 잠시 했습니다. 프놈펜 중심가, 캄보디아 왕궁에서도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는 “캄보디아-베트남 우정 기념탑”이라는 탑이 세워져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우정”이라는 것이 누가 정의한 것일지를 생각합니다.

이 기념탑은 1970년대 말에 세워진 것입니다. 많이들 아시다시피 1970년대 캄보디아는 크메르 루주의 집권과 ‘킬링 필드’라는 대규모 학살극을 경험했습니다. 크메르 루주는 ‘민주 캄푸치아’라는 정부를 세우고 공산주의를 추구하는 정당이었지만, 같은 공산주의 계열의 베트남과는 갈등을 벌였습니다.

유사한 계열의 두 정부가 갈등을 벌인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캄보디아와 베트남 사이 역사적으로 쌓인 반목이 일차적인 원인이라 할 수 있겠죠. 하지만 킬링 필드의 와중에 캄보디아 내에서 많은 베트남인들이 살해당하거나 차별당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특히 국경 지역에서는 양국 간 충돌이 빈발하며 살해당하는 민간인들이 늘어났습니다. 거칠게 나누자면 친소 계열인 베트남과, 친중 계열인 캄보디아 사이의 노선 갈등도 표면화되었습니다.

결국 1978년 12월 22일, 베트남이 크메르 루주 치하의 캄보디아를 침공합니다. 전쟁은 아주 손쉬웠습니다. 혁명이라는 이름 아래 학살을 자행하고 국가체제를 스스로 파괴해 온 크메르 루주에게 국토를 방어할 힘은 없었습니다. 1월 7일 베트남이 프놈펜을 장악했고, 17일 태국 국경까지 진출하며 사실상 캄보디아 전역을 손에 넣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베트남은 해방자였을 수 있습니다. 크메르 루주의 집권과 킬링 필드라는 학살극은 이런 방식이 아니라면 종결될 수 없었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캄보디아 내전과 킬링 필드를 경험하며 수백만 명이 학살당하고 그 이상의 사람들이 난민이 되었던 상황에서, 다시 한 번의 전쟁은 어떤 의미였을까요.

베트남은 이후에도 캄보디아에 계속해서 주둔했고, 일부 지역에서 반군 활동을 벌이던 크메르 루주와도 전쟁을 이어갔습니다. 이런 상황에 반발해 중국이 베트남을 침공하며 중월전쟁이 벌어지기도 했지만, 베트남은 중국에 사실상 승리하고 캄보디아 주둔을 계속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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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이미지 원본 출처 : 오마이뉴스 RSS Feed
전문 보러 가기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895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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