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비야에 왜 왔을까’ 후회, 하루 만에 바뀐 이유

햇살과 오렌지 나무가 싱그러운 도시, 스페인 세비야에서는 세 가지를 보고자 했다. 유럽에서 세 번째로 크고 콜럼버스의 묘가 있다는 세비야 대성당, 이슬람과 기독교 양식이 혼합된 알카사르 궁, 그리고 김태희 배우가 광고를 찍었다는 스페인 광장이었다. 하루 낮 동안 이 일정을 소화하고 저녁 기차로 마드리드로 이동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 부상으로 남은 여행이 가능할까.

여행 동안 아이가 아프거나 다치는 경우가 있을 수 있으니 대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여행 동안 내가 감기몸살이나 복통 정도는 겪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다치는 경우는 아예 예상에 없었다. 나는 보호자인데, 보호자가 다치면 어쩌란 말인가.

아빠의 부상에 당황한 아이

씻고 나오다 숙소 내 대리석 계단에서 나동그라지는 순간에, 허리와 오른쪽 팔꿈치의 통증이 워낙 격렬하여 몇 초라도 지체하면 그대로 계단 위에서 움직이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친 직후에는 엉겁결에라도 움직여질 것이니 일단 계단은 벗어나자는 생각이 순식간에 이어졌다. 몸을 굴려 왼팔로 지탱해 바로 앞에 있는 침대로 몸을 던졌다. 앓더라도 침대 위에서 앓자.

우주도 놀랐다. 그런데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는 모양이었다. 나를 잠시 지켜보다가는, 이내 다시 바닥에 엎드려 읽던 책을 마저 읽기 시작했다. 나는 죽을 듯이 신음 소리를 내는 와중에도 그게 못내 서운했다.

“우주야 아빠 너무 아픈데 너 계속 책만 읽기야? 아빠 좀 위로해주면 안 돼?”

그제서야 우주는 침대위로 올라와 내 손을 잡았다.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서 그랬어요. 아빠 괜찮아요?”
“모르겠어. 내일 아침이 되어봐야 알거 같은데?”

그래도 아이의 손을 잡고 있으니마음은 조금 안정되었다. 그런데 부상의 정도가 가늠이 안 됐다. 끙끙대며 30여분 정도 누워 있다가 간신히 몸을 일으켜 없는 공간에 몇 걸음 옮겨도 보고, 허리를 좌우로 살살 비틀어도 보았다. 허리 오른쪽 특정 구간에서 심한 통증이 왔다.

그동안 부실한 몸으로 숱하게 다쳐온 과정으로 미루어 자가진단을 해보면, 허리는 뼈나 신경의 문제까지는 가지 않은 심한 타박상같았다. 상체를 곧추 세우고 있는 동안은 버틸만 했다. 오른 팔꿈치는 뼈에 멍이 든 골멍 내지는 실금이 간 느낌이었으나, 움직임 자체에는 문제가 없었다. 내일 아침에 일어나 봐야 확실하겠으나, 그래도 여행을 계속할 희망이 보였다.

내일 세비야 일정을 마치면 우주와 나는 마드리드로 올라가 그곳에 살고 있는 고등학교 때 친구 집에서 네 밤을 의탁할 계획이었다. 몸에 정말 무리가 있으면 현지인인 친구와 상의해 병원에 가면 되겠지. 세비야를 그냥 지나칠 걸, 하루라도 보려고 굳이 무리하다가 이게 무슨 꼴이람. 모든 게 다 후회되기 시작했다. 후회의 와중에도 우주를 재우고 각종 예매와 일정 정리를 마쳐야 했다.

부상 다음날의 반전

다음날, 창 밖으로 사람들이 걸어가는 소리에 잠이 깼다. 창은 얇았고 밖은 좁은 골목길이었다. 1층이었기에 1m 옆에서 사람들이 걸어다니는 셈이었다. 몸의 상태는 어제 밤보다 더 나빠지진 않았고 추가적인 통증은 없었다. 일단 오늘은 버텨보자. 우리는 짐을 호스텔 사무실에 넣어 놓고 거리로 나왔다. 우주는 내게 앞으론 별 하나짜리 호스텔은 피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진지하게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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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워도 갔습니다, 유홍준 교수의 추천 답사 코스

환하게 웃는 산신령과 작은마누라와 본마누라가 새겨진 바위가 산허리에 있다. 작은마누라는 다리를 꼬고 의자에 앉아서 손가락을 볼에 대고 있다. 슬슬 웃으면서 용용 죽겠지 하며 놀린다. 본마누라가 이를 보고 짱돌을 집어던지려고 한다.

골짜기에서 만난 나무꾼이 우스개로 한 말이다. 1959년 4월, 부여박물관장을 지낸 홍사준 선생이 보원사 터를 조사하러 용현계곡을 찾았을 때다. ‘백제의 미소’로 알려진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 이야기다.

가야산 줄기인 일락산과 옥양봉 산등성이 사이에 용현계곡이 있다. 이곳을 따라 국립용현자연휴양림이 만들어졌다. 들어가는 길목에 마애여래삼존상과 보원사 터가 차례로 있고, 산을 넘으면 개심사가 있다.

한여름 더위가 절정을 보인 8월 초, 국립용현자연휴양림을 찾았다. 백제의 미소를 보며 같이 웃음 짓고, 보원사 터를 거닐며 중생이 되었다. 배롱나무꽃이 핀 개심사에도 들렀다.

이웃처럼 포근한 백제의 미소

마애여래삼존상은 천년 넘게 바위 절벽에서 숨 쉬고 있었다. 보원사 터를 조사할 때 세상에 알려졌다. 우리나라에서 찾아낸 마애불 가운데서 가장 뛰어나다. 여래상을 가운데 두고 오른쪽에 반가상의 보살, 왼쪽에 봉주보살이 뚜렷하게 조각되어 있다. 반가상은 미륵보살을, 봉주보살은 관음보살 또는 제화갈라보살을 나타낸 것으로 추정된다.

여래상은 연꽃잎을 새긴 대좌 위에 서 있다. 초승달 같은 눈썹, 은행알 닮은 눈, 오뚝한 코, 두툼한 입술이 풍만한 얼굴에 잘 어울린다. 오른손은 앞으로 뻗어 손바닥이 보이고, 왼손은 가슴께로 올려졌다. 둥근 광배 안쪽은 연꽃을, 둘레는 불꽃무늬를 새겼다. 그윽하게 웃는 모습이 이웃집 아저씨처럼 포근하다.

봉주보살상은 길쭉한 얼굴에 눈웃음을 치고 있다. 치마는 발등까지 길게 늘어졌고, 하트 모양을 한 목걸이를 찼다. 보배로운 구슬을 두 손으로 감싸 품에 안고 있다.

반가상은 둥근 얼굴에 볼살이 통통하다. 누가 뭐래도 꺼릴 것 없다는 듯 한 발짝 물러나 의자에 앉아 있다. 여래상과 사이도 봉주보살상보다 더 떨어졌지만 개의치 않은 표정이다. 왼손은 오른발 발목을 잡고, 오른쪽 손가락은 턱을 괸 채 깊은 생각에 잠겼다.

마애여래삼존상은 시시각각으로 변한다. 해가 뜰 때와 질 때, 날이 흐릴 때와 맑을 때 모습이 다르다. 철에 따라, 보는 방향에 따라 웃는 생김새도 여럿이다. 그들 앞에 서면 온갖 시름이 다 씻겨 내려가는 듯하다. 바라보는 사람들 얼굴에 미소가 저절로 번진다. 백제의 미소라고 일컫는 이유다.

관리소 옆으로 난 좁은 비탈길을 오르면 산신각이 있다. 마을 사람들이 산신제를 지내는 곳이다. 그곳에서 마애여래상이 새겨진 바위 전체를 볼 수 있다. 위에 있는 바위가 처마 역할을 하여 비바람을 막아준다. 더 위쪽에 얹혀있는 바위들은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듯하다. 옆에 늘어진 빨간 줄 끝에 센서가 붙어있다. 일부 구간에 생긴 틈새가 변하는지 재는 중이라고 한다.

산신각 뒤로 가면 성원 할아버지가 손수 세운 묘비가 있다. 그는 오랫동안 마애불 관리인이었다. 정년퇴직으로 마애불을 떠나게 되자 그동안 있었던 흔적을 비석에 새겨 남겼고, 유홍준 교수는 문화유산답사기에 성원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실었다.

절 여행의 으뜸은 폐사지 답사

폐사지, 한가로운 곳, 하나를 보아도 제대로 감동할 만한 유물을 볼 수 있는 곳, 이 세 가지 조건을 만족시키는 답사 코스로 유홍준 교수는 보원사 터를 마애여래삼존상과 함께 추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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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 속 천사가 떴다, 제주 한라산에 나타난 브로켄 현상

지난 2일 오전 8시께 한라산 백록담 정상에서 브로켄(Broken) 현상이 나타나 신비로움을 안기고 있다.

브로켄은 산 정상에 있는 사람 앞에 안개가 끼어있고 등 뒤로 해가 비칠 때 그림자 주변에 무지개 테가 둘려 있는 것처럼 보이는 기상광학 현상이다.

과거에는 원인을 알지 못해 ‘산의 요괴’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으나 최근에는 행운의 상징으로 여겨지고 있다.

사진을 찍은 독자는 “백록담이 숨어버려 구름이 걷히기를 기다리다 브로켄을 보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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