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혁신당은 어디서 왔는가 : 갈라치기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

지옥에서 돌아온 자

조국이 돌아왔다. 이젠 그를 아무도 교수라 부르지 않는다. 모두가 그를 조국혁신당의 조국이라고부른다. 이제 그는 완연한 정치인이다.

정치인 조국이 창당을 선언한 지 한 달이 조금 넘었다. 그 사이 조국은대한민국 정치중심에 섰다.그리고 선거판을 흔들고 있다. 불과 며칠 전까지 시장에서 한동훈이 들고 흔드는 생닭을 쫓기바빴던 카메라들이, 연설 중에 비장해진조국의 표정을 담기바쁘다. 선거를 2주 앞둔 지금, 조국이 모든 정치 이슈를 빨아들이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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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상은 수치로 반영되고 있다. 특히 보수 세가 강한 대구 경북 지역에서도 20%를 웃도는 지지율을 기록했다. 조국혁신당의 ‘파란 불꽃 펀드’는 개설 20분 만에 100억이 모였다. 말 그대로 기염을 토하는 중이다.

조국이 정치를 하게 될 거라고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다. 올 1월까지만 해도 그랬다. 그때 정치 평론가들에게 총선 정국에 조국 등장 가능성에 대해 묻는다면, 다들 정신 나간 소리라고 했을 것이다. 진짜 그랬다. ‘조국 사태’를 일으킨 장본인으로서, 정치의 계절에 그의 등장은 역풍 그 자체로 보였다. 선거에 조국의 이름이 등장하면 정권 심판론에 불리한 구도가 만들어질 거라고,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다.

다 떠나서, 이전의 조국은 정치와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었다. 신중하고 어쩌면 유약한, 학자의 모습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좋게 말하면 ‘고고한’,나쁘게 말하면 ‘순진한’ 양반이었다.

조국 대표가 얼마나 순진한 사람이었는지 2019년 법무부 장관 후보자 시절 본인의 모든 의혹을 기자들과 허심탄회한 질의응답으로 돌파하겠다고 나선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날 그는 오후 3시 30분부터 다음 날 새벽 2시 16분까지 무려 11시간 동안 기자들의 질의에 응답했다. 절차에도 없는 질의응답 시간을 공직 후보자가 이렇게 길게 가진 건은 유례없는 일이었다. 기자들은 같은 질문을 반복해서 했다. 궁금해서 물은 것이 아니었다.그 후 기자들이 무분별하게 보도하던 의혹들은 해소되었을까?

그랬을 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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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은 1면에 <“없었다” “몰랐다”… 조국의 ‘해명회’>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고, <조선일보>는 <한밤까지 50차례 “나는 몰랐다”>라는 제목으로 조 후보자가 제기된 의혹을 모두 부인했다고 보도했다. 처음부터 이런 제목을 미리 써놓고 온 기자들을 밤새도록 앉혀놓고 진정성있는 질의응답을 하면 자신의 의혹이 풀릴 거라고 기대할 만큼, 그는 순진한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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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이 달라졌다. 순진한 학자의 길을 접고 비장한 정치인이 되기로 결심했다. 검찰의 야만적 수사와 언론의 천박한 보도가 가정과 가족을 풍비박산 내는 것을 꼼짝없이 지켜봐야 했던 남자는 천 길 낭떠러지를 기어 올라와 정치인이 되었다. 그는 더 이상 샌님이 아니다. 고난과 오욕의 시간을 지나 아무것도 잃을 게 없는 검투사가 되어 돌아왔다. 지옥에서 돌아온 자,현실판 레버넌트. 뒤가 없는 자의 행보를 걷고 있다. 이제 여의도에서 정치인 조국에게 물음표를 던지는 자는 아무도 없다.

조국혁신당은 어디서 왔는가

2024년 총선 정국에 불어닥친 ‘조국 현상’에 대해 이런저런 분석이 많다. 수많은 전문가와 평론가들의 셈법에 없던 등장과 돌풍이기 때문이다. 조국 현상은 더 멀리서 찾아야 그 성분을 알 수 있다.

조국 대표와 조국혁신당이 단숨에 높은 지지율을 얻은 이유. 조국 현상의 시작점은 여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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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적폐청산을 위한 검찰개혁 촛불문화제. 일명 ‘서초동 조국수호 집회’다.

검찰과 언론이 보여준 무뢰배의 행패에 가까운 짓거리를 보며 조국 장관을 지키고 싶었던 수많은 이들이 거리에 있었다. 수사는 부당했고 언론은 취재 윤리를 한참 넘어섰지만 누구도 조국 대표를 지켜주지 못했다.


중략

기사/이미지 원본 출처 : 딴지일보 RSS Fe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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