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 불교의 출발지에 가다

스리랑카에 불교가 전해진 이야기

기원전 247년 아누라다푸라의 왕 데바남피야 팃사(Devanampiya Tissa)가 왕궁으로부터 동쪽으로 16㎞ 떨어진 미힌탈레(Mihintale)로 사냥을 나갔다. 그때 불교를 전파하기 위해 이곳에 온 인도 마우리아 왕국의 마힌다 아라한을 만나게 된다. 팃사 왕은 마힌다의 설법을 들었고, 그것을 받아들여 그를 왕궁으로 초대했다.

마힌다는 왕실 사람들을 대상으로 두 번 설교했다. 그 후 불교는 왕실로부터 귀족과 평민에게까지 확산되었다. 그리고 왕실 정원 한쪽에 마힌다가 거주하면서 포교할 수 있는 사원이 세워졌다고 한다. 이것이 마하 사원(Mahavihara)으로 아누라다푸라에서 가장 큰 절이 되었다.

그리고 미힌탈레에는 세티야기리 사원(Cetiyagirivihara)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세티야는 원형의 불탑으로 아라한 마힌다의 사리가 이곳에 보관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힌탈레 유적은 산 중턱부터 정상까지 넓게 펼쳐져 있다.

산 중턱 주차장에서 버스를 내리면 벽과 계단을 만난다. 여기서부터가 사원 영역이다. 벽 가운데 있는 계단을 올라가면 평지가 나타나는데, 이곳이 사원의 마당이다. 마당 왼쪽으로 사각형의 커다란 공간이 위치한다.

이곳이 공양간을 겸한 요사채다. 승려들은 여기서 숙식을 하는 등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다. 공양간은 직사각형으로 폭이 8m 길이가 20m쯤 된다. 공양간 한쪽에는 직육면체의 커다란 돌확이 놓여 있다. 승려들이 먹을 밥을 퍼놓는 용기로 보인다. 공양간 건물은 파괴되고 기둥 일부가 부러진 채로 서 있다. 요사채 옆으로는 법당 또는 강당으로 사용되었을 공간의 축대와 기둥이 비교적 잘 남아 있다.

그리고 문 양쪽으로 두 개의 직사각형 화강암 석판이 세워져 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글씨가 새겨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사원에서 지켜야 하는 계율과 지침, 사원의 운영에 관한 사항으로, 중세 싱할라어로 적혀 있다고 한다. 석판 앞 안내판에는 그 내용이 싱할라어 타밀어 영어로 설명되어 있다. 이 석판은 10세기 후반 아누라다푸라를 통치했던 마힌다 4세(956~972) 때 만들어졌다. 그중 중요한 내용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승려는 아침 일찍 일어나 명상을 하고 이를 닦고 예법에 따라 옷을 입어야 한다. 식당에 가서는 감사하며 음식을 받아야 한다. 몸이 아파 공양하러 갈 수 없는 승려는 의사들이 권하는 음식을 먹어야 한다.

불교의 교리인 삼장을 가르치는 승려는 필수적인 교육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들을 후원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공부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승려 교육을 위해 땅을 받은 사람들은 그것을 활용할 수 있지만, 승려와 공동으로 분배해서는 안 된다.

일하는 사람들을 부리고 해고하는 일은 집행위원으로 활동하는 승려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사원에 거주하는 승려는 어떤 재산도 소유해서는 안 된다. 위의 규범을 지키지 못하는 승려는 사원에 거주할 수 없다. 집행위원회는 경전, 행정, 경영, 운영 등의 대표자로 구성된다. 사원의 재산을 관리하는 사람은 파손에 대비한 적립금을 마련해야 한다.”

법당과 강당을 지나면 산 위로 올라가는 계단에 이르게 된다. 1,840개의 계단을 올라가면 평지가 나타나는데, 이곳이 암바스탈라(Ambasthala) 사원 영역이다. 이곳은 신성한 지역이기 때문에 신발과 모자를 벗어야 한다. 입구에 합장을 한 왕족의 석상이 하나 있는데, 팃사 왕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전체 내용보기


중략

기사/이미지 원본 출처 : 오마이뉴스 RSS Feed
전문 보러 가기 :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110190

사용자 리뷰:
[Total: 0 Average: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