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면주사의 ‘면’에서 ‘면천(沔川)’이라는 이름이 유래했다. 이는 중국 시경의 한 구절에서 따온 것이다. “넘쳐흐르는 저 강물이 바다로 흘러가네(면피류수沔彼流誰, 조종우해朝宗于海)”에서 면천이라는 이름이 나온 것이다.
한편, 면천 안내판이나 당진시 홈페이지에서는 합단병을 원나라 혹은 거란군이라고 설명한다. 충렬왕 13년(1287), 칭기즈칸의 막냇동생 옷치긴 후손이자 요동 일대를 근거지로 삼았던 내안(乃顔, 나얀)이 쿠빌라이에게 대항해 반란을 일으켰으나 실패했다. 이후 합단은 충렬왕 16년(1290)에 요동에서 몽골 진압군에게 패배한 뒤, 두만강을 건너 고려를 침범하였다.
고려와 조선, 해상 교통의 요충지
이곳 면천은 고려와 조선 시대를 거치며 군사적·경제적으로 중요한 거점이었다. 충청도 조운(漕運)의 중심지로 전국에서 운반된 곡식을 보관하는 창고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나 성종 8년(1477년), 창고가 범근내에서 공세곶으로 이전되면서 조운 중심지 역할은 다소 축소되었다. 그럼에도 면천은 해산물과 소금 생산지로 명성을 떨쳤으며, 해안가 지역은 궁방과 권세가들에게 강제로 빼앗기기도 했다.
면천에 읍성과 향교가 있듯이, 당진과는 별도의 행정구역이었다. 한때는 당진군과 동격인 군(郡)으로 22개 면을 관할 했다. 그러나 1914년 4월 1일, 면천군이 당진군에 편입되면서 ‘마암면’이 되었고, 1917년 ‘면천면’으로 개칭되면서 본래 이름을 되찾았다.
인근 합덕은 본래 ‘부곡(部曲)’이었다. 고려의 향·소·부곡은 노비와 양인 사이의 피차별 계층을 의미한다. 고려 충렬왕 24년(1298), 고을 사람 황석량이 원나라에서 공을 세운 덕분에 ‘합덕현’으로 승격되었다. 이후 고종 32년(1895) 면천군에 편입되었으며, 1973년 읍(邑)으로 승격되면서 현재 면천면과 비교되는 지역이 되었다.
면천 읍성과 1100년 된 은행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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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이미지 원본 출처 : 오마이뉴스 RSS Fe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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